이제는 고전이 된 C. S. 루이스의 소설.
소설에서도 이미 밝혔듯이, 삼촌 악마와 조카 악마는 모두 영적 존재이다. 그런데 이들 간의 소통 방식이 고작 '편지'라니, 편지 쓰는 악마라는 이미지는 현재 우리에게 비춰보면 조금 구식이다.
아이러니하게도 이 책에서 신에 대해,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며, 누구보다 인정하고 있는 이는 바로 악마인 스크루테이프 자신이다.
하지만 이 책을 통해 기독교 변증(apologetics)까지 기대하기란 어렵다. 책에서는 기독교에 대한 근본적 물음들이 생략되어 있다. 대신 이 책은 기독교인들의 자기 성찰을 위한 글로서 훌륭하다.
루이스는 소위 성도가 신앙 생활에서 범하기 쉬운 오류에 대해 상당히 날카롭게 지적한다. 바로 이 점이 이 책이 가진 장점인 셈이다. 성도는 '성도'라는 관점 밖에서 자신을 바라볼 수 없다. 일상에서 우리는 우리가 잘 믿고 있는지 판단할 합리적인 근거를 갖추지 못한다. 우리는 보통 잘 믿는지를 교회 안 혹은 성도들과의 관계에서 확인 받는데, 교회(의 제도와 관습)는 신앙의 자기 객관화를 방해하는 가장 큰 요소 중 하나이다.
교회는 "잘 믿으라."는 구호를 남발한다. 그렇게 양산된 '잘 믿는 성도'는 때로 독선적이거나 비뚤어져 있다. 그들은 '못 믿겠다.', '믿기지 않는다.' 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다. 그들 중 대다수는 어느 날 그냥 믿어진 사람들이다. 하지만 그 '그냥'의 가벼운 뿌리를 애써 들춰보진 않는다. 하여 우리의 신앙이란 것은 얼마나 자기 합리화에 능숙한지......
다행히도 루이스가 그려낸 악마 스크루테이프의 가르침 속에서 현재 교회가 하지 못하는 신앙의 객관적 평가를 부족하나마 추체험할 수 있다. 하지만 이미 '잘 믿는' 성도에게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는 아무 울림도 주지 못할 것이다. 그것이 진짜 서글픈 일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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